황학동은 서울의 중심부와 외곽을 잇는 독특한 위치에 자리 잡은 곳으로,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시장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봐 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황학동 시장의 역사적 변천과 그 의미를 살펴보며, 서울의 상업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알아봅니다.
황학동의 지리적 특성은 이 지역이 시장으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신당동과 왕십리 사이에 위치한 황학동은 오래전부터 도심과 외곽이 만나는 접점이었습니다. 한양도성의 광희문(光熙門)을 나서면 만나는 첫 번째 마을이자, 외곽에서 한양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마지막 마을이었습니다.
이러한 위치적 특성으로 인해 황학동은 자연스럽게 상업 활동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이 지역에 식자재를 거래하는 난전(亂廛)이 생겨나면서 상업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청계천으로 향하는 지류들이 지나는 저지대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주거지가 들어서기 어려웠던 공간들이 자연스럽게 시장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황학동 시장의 공식적인 시작은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성동사설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에 등록되었으며, 1949년에는 309개의 점포를 보유해 서울의 사설시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1950년에는 인근에 '성동중앙시장'이 설립되었고, 이와 함께 양곡시장도 문을 열었습니다.
한국전쟁은 황학동 시장, 특히 양곡시장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53년에는 성동중앙시장의 양곡시장이 서울 시민이 소비하는 양곡의 70%를 공급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는 전쟁 이후 식량 수급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합니다.
황학동 시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그 성격도 변화해 갔습니다. '벼룩시장', '도깨비시장', '개미시장', '고물시장', '만물시장', '마지막 시장' 등 여러 별칭은 이 시장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희귀한 물건을 모아온다는 의미와 함께, 물건에서 벼룩이 금방이라도 기어 나올 것 같다는 재치 있는 표현에서 유래했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학동 시장은 각 가정에서 나온 고서화(古書畫)와 도자기 등을 매매하는 장소로 발전했습니다. 1973년 청계천 복개 공사가 완료된 후에는 삼일 아파트를 중심으로 중고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종종 진품도 발견되어 골동품상들과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한때는 130여 개의 골동품상이 밀집해 있을 정도로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1986년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황학동 시장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정부가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장안평에 골동품상가를 설치하면서 황학동의 많은 골동품 가게들이 이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골동품 상권이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황학동 시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의 확산과 함께 저렴한 중고품 시장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황학동 시장도 급성장했습니다. 기존의 1,000여 개 점포에 더해 새로 1,000여 개의 노점이 들어서 1km가 넘는 긴 시장을 형성했습니다.
2003년 청계고가도로 철거와 함께 황학동 시장은 또 다른 변화를 겪게 됩니다.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인해 주변 노점상들이 철거되었고, 황학동 시장의 노점상들도 이전해야 했습니다. 2004년에는 동대문운동장 안에 '동대문운동장 풍물벼룩시장'이 개장되어 노점상들을 수용했습니다.
최종적으로 2008년 4월 26일, 구 신설동 옛 숭인여중 부지에 '서울풍물시장'이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국민들이 함께 일구어낸 시장의 역사가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학동 시장의 역사는 서울의 상업 문화와 도시 발전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심과 외곽을 잇는 지리적 특성, 전쟁과 경제 위기 등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도시 개발 정책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만들어냈습니다.
오늘날 서울풍물시장은 과거 황학동 시장의 전통을 이어받아 중고품과 골동품을 거래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관광 명소로서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여기 없으면 대한민국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학동 시장의 역사는 우리에게 도시의 변화와 적응, 그리고 전통의 계승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면서도 그 본질적인 기능과 의미를 잃지 않고 이어온 황학동 시장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서울의 상업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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